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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유럽살면서 생긴 알러지 증상, 알러지 약

유럽에 산지 두 해쯤 넘어가면서 확연히 느끼는 몸의 변화 중 하나는 없던 알레르기가 생긴다는 것. 미국에 와서도 증상은 계속된다. 한 일 년을 지나면서 낯설었던 생활도 적응을 했겠다 이제 좀 유럽에서 살아보는구나! 싶었는데 아이들까지 알레르기로 고생을 하니 마음이 괴롭다. 

뼛속이 으스스한 겨울이 지나가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인데 새싹이 트고 꽃 피는 계절이면 어김없이 콧물에 코막힘에 두통 불면증. 눈, 코 주변이랑 입천장까지 간지러워지는 무시무시한 알레르기 증상이 생기고 나서는 계절이 바뀌는 게 사실 겁이 난다.

 

초반에는 변덕이 심한 영국 날씨에 아이가 콧물을 흘리니까 감기 초기 증상으로 생각하고 Boots 약국에서 콧물감기약을 사다 먹는데 이게 멈출 생각을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코가 막히기까지 하니 감기가 더 심해졌구나 싶었다. 자는 시간에는 방에 빨래도 널어놓고 민트 티도 마시게 하고 웬만한 건 다 한 것 같다 싶을 때 심해졌던 증상이 사라졌는데 그게 한 달은 걸렸다. 

 

 

다음 해 그 계절에 다시 증상이 시작되면서 다른 집 아이들도 똑같은 증상을 겪는 게 보였다. 현지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같은 증상이 있어서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우리 애만 그런 게 아니라는 데에는 위안이 들었는데 알레르기약을 먹는다는 걸 듣고는 점점 고민이 됐다. 하루 한 알 먹으면 괜찮다고 하는데 그럼 한 달 동안 매일 먹어야 하는데... 이게 마음에 걸렸다.  

첫 증상은 콧물이었지만 해가 지나면서는 가려운 눈을 비벼서 눈이랑 주위가 빨개지고 오돌토돌 거칠어졌다. 잠도 잘 못 자고, 당연히 집중도 못하고, 콧물 때문에 코는 또 헐고. 어쩐지 영국 이 사람들 코가 빨간 게 술 때문만은 아니었어... 손수건도 그냥 갖고 다니는 게 아니었어... 그래 어쩐지 캐러멜 박스만 한 휴대용 휴지가 어느 가게에나 있더라니.

 

 

 

알레르기 약을 복용하고는 평화가 찾아왔다. 아직 6학년이라 매일 약을 먹는게 신경이 쓰여 아침마다 컨디션을 묻고 증상이 가벼운 날이나 학교에 안 가는 날엔 평소에 하던 대로 하되 조금 더 살피고, 증상이 있고 등교하는 날은 꼭 챙겨 먹였다.

하루 24시간 안에 한 알만 복용하는 거니까 어느 시간에 먹어야 하는지를 먼저 정한다. 아무래도 낮에 알레르기 증상이 올라오면 학교생활에 지장이 있고 또 졸리면 안 되니까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꼭 Non-Drowsy로 한 알 먹었다. Non-Drowsy가 아닌 걸 복용할 거면 자기 전에 먹는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 이런 게 있는 줄 모르고 구분 없이 먹었다가 하루 종일 시차 적응하는 줄 알았다. 

 

아이와 다르게 내 알레르기 증상은 가을마다 찬 공기랑 같이 오는데 코막힘이 심해져서 잠을 자기도 어려웠고 눈, 입천장의 간지러움이 심했다. 약 없이 버텨보려고 시즌마다 무던히 노력하다 지쳐서... 완전히 지쳐서 대체 원인이 뭔가 하고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혈액검사 후 받아본 결과지에는 생전 처음 보는 쬐만한 단어들이 A4 용지 세장에 빼곡해서 정말 열심히 사전을 검색했는데 이것도 글자만 한글이지 봐도 구별 못하겠는 유럽에 서식한다는 나무들, 꽃들, 풀들...

 

이거였구나. 유럽 먼 나라에 와보니 생전 처음 보는 나무에 꽃에 눈이 즐거워서 좋다고, 역시 외국은 달라~ 자연이 보기도 좋고 싱그럽다고 하며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친해질 수가 없는 거였구나...

한국에는 있지도 않은, 방방마다 깔린 생소한 카펫, 먼지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분들도 몸이 환경에 적응이 안돼서 이상반응을 보이는 거였어. 

우리를 고생시킨 알레르기 증상의 이유를 알아서 후련했고 자연마저 나를 이방인 취급하는 것 같아 착잡했다.

 

의사는 알레르기 증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게 아니라 약을 복용하는 게 낫다 했고, 한 달 동안 하루 한 알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럼 됐을걸... 그 고생을 했네. 언젠가 낫겠지 하고 견뎌보려고 한 것이 그제야 미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플 때마다 한국이 더 그리워진다. 한 블록 건너 있던 소아과, 청소년 의학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눈만 돌리면 병원이고 진료받으러 가는 게 뭐 대단한 일도 아니었는데... 큰애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축구하다 다쳐 동네 정형외과에 가서 뜨뜻하게 적외선 치료에 고주파 치료까지 물리치료를 혼자 받고, 처방전 받아 아래층 약국에서 약도 사 오는 게 일도 아닌데.

외국사람들한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

 

아이가 먹을 약을 사면서 봄을 맞는다. 이제는 고통 없이 가을을 맞고 보낸다.